릴레이갤러리 5060]
김순임 작가 _4th ‘그 공간 17’과 ‘어디서 굴러먹던 돌멩이’
지난주까지도 뜨겁고 습한 공기에 헉헉댔는데, 그런 기억이 햇살에 바래지듯 이번 주 내내 찬 바람이 저녁 공기를 식혀주고 있다. 이 쾌적하고 행복한 순간이 짧을 것임을 알기에, 감사하면서도 벌써 아쉽다. 그리고 스치는 찬 공기에 다가올 겨울을 벌써 의미 없이 걱정하고 있다.
마지막 연재의 글을 쓰기 위해 그해 겨울의 기억을 뒤적이며, 월미도 앞 바닷가, 볼을 때리는 고통스러운 찬바람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인천 앞 바다엔 월미도가 있다. 그 해 겨울 월미도에 인천해양 박물관이 개관하였고, 영광스럽게도 인천 작가로 초대되어 <The Space17-인천>을 인천 앞 바다가 바로 보이는 박물관 로비에 설치하였다.
사진01) 그 공간17 –인천, 440x440x H 490cm 공간에 가변설치, 무명실, 목화솜, 인천돌멩이, 2024 인천해양박물관 설치
사진02) 그 공간17 –인천 (부분), 440x440x H 490cm 공간에 가변설치, 무명실, 목화솜, 인천돌멩이, 2024 인천해양박물관 설치
전시를 위해 9월에 박물관 학예사님들이 작업실로 찾아와, 2시간여 작업 이야기를 하였다. 전시 준비를 하면서 이렇게 작업실을 방문하는 기획팀을 만나면, 그 전시와 공간에 무한 애정이 생겨난다. 그래서 그런지 인천해양 박물관은 여전히 나만의 내적 친밀감으로 공간과 그 주변의 환경이 눈을 감으면 훤히 그려진다.
사진03) The Space17 –인천Incheon, 504개의인천돌멩이,무명실,목화솜, 솜이불22채,가변설치,인천국제여성미술비엔날레, 2009
사진04) The Space17 –정발산, 정발산의 돌멩이, 무명실, 목화솜, 솜이불2채, H380x 1000x1000Cm 공간에 가변설치, 2026, 고양미술축제 고양시립 아람미술관 설치
이 작업은 여러 다양한 공간, 여러 다양한 계절에 전시되지만, 특히 겨울에 설치할 때 더 기분이 좋다. 폭신한 솜을 만지면 시린 외부 공기를 잊을 수 있고, 찬 돌멩이들이 무명실에 의해 공중에 뜨면, 움츠러지는 어깨를 펴고 다시 신나는 감정이 솟는다.
사진05) The Space17 –난지, 가변설치, 무명실, 목화솜, 난지도의 돌멩이, 2008 그림손갤러리 설치
사진06) The Space17 –난지, 가변설치, 무명실, 목화솜, 난지도의 돌멩이, 2008 그림손갤러리 설치
<The Space / 그 공간> 시리즈는 현재 100건여 시리즈가 있는데, 이 중 <The Space 17>은 2006년 이후 여러 도시와 공간과 시간, 형태를 달리하며 설치되었다. 전시 공간을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솜과,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무명실, 바닥에서 살짝 떠서 유영하는 그 지역의 돌멩이로 구성되어 있다.
그곳의 돌멩이.
길 위의 돌멩이는 작든 크든 그 무게로 가장 낮은 곳을 구른다. 그곳에서 사람보다 오래 살며 길 위의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다.
2002년 남동생과 이대 앞에서 자취를 하고 있을 때, 뭘 주워와서 널어놓는 미대생 누나와 깔끔쟁이 공대생 남동생이 살고 있는 곳에선 늘 옥신각신 이걸 버리네, 안되네 하는 논쟁이 끊이질 않았다. 언젠가 동해 바닷가에서 주워온 동글동글한 돌멩이는 책상 위에서 몇 개월 동안 있으며 내 벗이 되어 주었는데, 동생 눈에는 예쁘지도 않은 돌멩이를 왜 버리지 못하고 책상 위를 너저분하게 만들고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버려!’, ‘싫어!’를 반복하다, 나는 이 돌멩이가 나에게 왜 특별한지 생각해 보았다. 그건 ‘기억’이었다. 돌멩이를 만난 장소의 기억, 그 순간의 감정, 환경의 촉감, 바닷바람 냄새, 등을 소환해 주는 것은 이 돌멩이의 존재였다.
사진07) 2003년 만안교 아래에서 돌멩이를 만나고 있는 작가, 사진: 박찬응(전 스톤앤워터 기획자, 작가)
2003년 안양의 대안공간 스톤앤워터에서 ‘새로운 희망’이란 기획전에서 나는 전시 기간 한 달 동안, 처음 알게 된 안양의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길 위의 돌멩이를 만나고, 돌멩이가 있는 장소의 사진을 찍고, 돌멩이 위에 그 장소의 이름과 만난 날짜를 기록하여 전시장으로 옮기는 퍼포먼스형 설치였다. 나만의 기억을 기록하고 공개하면서, 관람객에게 이 길 위의 돌멩이가 특별한 장소에서 온, 특별한 아이가 되는 경험을 하였다. 관람객 중에는 전시장의 사진에서 자신의 동네, 집 앞, 졸업한 초등학교 등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온 돌멩이를 특별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진08) 2008 김순임 개인전_어디서 굴러먹던 돌멩이, 스페이스 빔, 전시전경
사진09) 2008 김순임 개인전_어디서 굴러먹던 돌멩이, 스페이스 빔, 자신의 돌을 만나고 있는 어린이들
이후, 공주, 서울, 일본 후쿠시마, 도쿄, 미국 버몬트, 인천, 등 다양한 장소에서 돌멩이를 만나고 기록하고, 이렇게 모인 돌멩이들을 시작한 지 5년이 되는 해, 인천문화재단의 개인전 지원으로 인천의 스페이스 빔에서 발표하였다. 거친 빔의 공간 한가운데 놓인 난로를 중심으로 둘러 설치된 돌멩이들의 모습은 각기 다른 곳에서 온 이들이 모여 와글와글 어울리는 듯했다.
관람객이 바닥에 있는 돌멩이의 기록을 보고, 전시장 벽에 있는 사진의 기록과 매칭되는 것을 찾아내면, 돌멩이와 사진을 1000원에 소장할 수 있도록 해서, 이름 없는 이 돌멩이가 누군가에게 특별한 아이가 되어 계속 굴러갈 수 있었으면 했다.
사진10) I meet with Stone.- 어디서 굴러먹던 돌멩이, 2006 미국 버몬트 스튜디오 작가 작업실 오픈스튜디오 행사, 관람객이 돌멩이의 사진을 찾고 있다.
사진11) 어디서 굴러먹던 돌멩이, 길위의 돌멩이, 트레이싱지에 디지털 프린트, 가변설치, 2010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 설치
길바닥을 구르다, 전시장을 구르고, 또 발견되어 소중히 여겨줄 관람객에게 굴러가는 돌멩이들을 만나고 다니다 보니, 이 돌멩이들의 시야가 무척 낮고, 낮은 곳에서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이들이 무게를 잊고 가볍게 살짝 공중을 유영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사진12) The Space12 - 기혼강, 기혼강의 돌, 무명실, 양털, 가변설치, 2007, VSC_버몬트 스튜디오 센터 Red Mill Gallery, 미국
사진13) The Space22-제주, 목화솜, 무명실, 제주도의 돌멩이, 8x6.5m 공간에 가변설치, 2009 제도도립미술관 설치
처음 이 시리즈를 구상했던 곳은 미국의 버몬트 스튜디오센터 내 셜츠 조각 작업실, 내가 2달간 사용하던 공간이었다. 이곳 창에서 바라보면, 3월의 봄, 설레는 공기에도, 온 세상이 하얗게 덮인 눈이 보였다. 깊이 쌓인 눈은 세상을 덮어주는 따뜻한 솜이불 같았다. 찬 눈과 따뜻한 솜이라니... 이상할 수도 있지만, 난 이 상반되는 온도가 같은 촉감과 시각적 자극으로 느껴졌다. 빛나는 햇살과, 포근한 버몬트의 눈, 그 아래 흐르는 기혼 강의 물과, 강가에 자리 잡은 둥그런 돌멩이들, 모두가 이 공간의 풍경이었다. 2006년 눈 많은 봄에 설치를 구상하고, 다시 찾은 2007년 버몬트에서 개인전으로 발표할 수 있었다.
사진14) 2007 미국 버몬트 스튜디오 내 김순임작업실, 양털을 코더링 하고있는 작가
사진15) 2006 미국 버몬트 스튜디오 김순임 작업실 앞 기혼강 가에 3월 눈이 쌓인 모습
작업 재료인 목화솜을 구하려고 여러 재료상을 돌아다니다 지쳐, ‘너네는 겨울에 추우면 뭘로 따뜻하게 해?’라고 물었더니 ‘울 이지~’ 해서, ‘그럼 울은 어디서 구해?’ 했더니, ‘양 떼 농장에 가면 있지’ 했다. 작업을 도와주던 테크니션의 도움으로 인근의 양 떼 농장을 방문하여 1톤이 넘는 지난해 깎아 둔 묵은 양털을 구했고, 한 달 반 동안 이를 털고 씻고, 말리고, 빗고를 반복하였다. 작가의 작업실인지... 영세 양모 공장인지... 당사지인 나도 구분이 잘 안 갔지만, 원 재료를 다듬는 긴 시간 동안, 양털의 촉감과 색감에 동화되었었다.
햇살이 내리쬐는 기혼 강가의 눈 덮인 풍경이, 솜 이불의 솜을 꺼내 이불 속의 진짜 사람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공간의 가운데, 이불의 위가 천정, 이불의 아래가 공간의 바닥을 유영하는 돌멩이, 그리고 그 공간과 돌멩이를 연결하는 무명실이 설치의 전부이다. 공간에 초대된 사람들은 따뜻한 이불 속을 시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사진16) The Space12 - 기혼강, 기혼강의 돌, 무명실, 양털, 가변설치, 2007, VSC_버몬트 스튜디오 센터 Red Mill Gallery, 미국
사진17) 그 공간17 – 목포, 목포돌멩이, 목화솜, 무명실, 자석, W8x D7x H12m 공간에 가변설치, 2024 목포 연안여객터미널 설치
버몬트에서 개인전 <The Etherial>을 오픈하고, 전시장을 방문한 당시 7세 로날드가 귀여운 목소리고 ‘그래서 넌 뭘 만든 거야?’ 하길래, ‘뭐 같아?’라고 질문을 되돌리니, ‘음~ 이건(무명실) 비고, 이건(양모) 구름이고, 이건(돌멩이들) 사람들이야~’ 했다. 감각에 의존한 우매한 작가의 눈을 틔어주는 소중한 신의 언어였다.
아! 문득 이 설치를 시작한 지 20년이 되었음을 인지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스케일은 전시 공간에 맞추어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하고, 돌멩이는 지역에 따라 수집되었으며, 설치와 철수 매뉴얼은 이케아의 그것보다 정교해져서, 이제 이 작업은 혼자 굴러 잘 성장하고 있다.
작가의 손을 떠난 작업은 혼자 스스로 잘도 확장되고 성장해 나간다. 이를 지켜보는 행복감과 불안감은 육아의 그것과 닮아 있다.
4번의 연재 기회, 2024년 쉰이 되는 해의 4번의 계절을 돌아보았다. 작업은 늘 환경에 의존하며 조금씩 변화하지만, 언제나 처음 시작된 순간을 더듬으면, 돌아오지 않을 그 순간의 설렘, 그리움에 울컥해 버린다.
이 작업을 할 때, 함께 했던 사람들이 더욱 보고 싶은 초가을 밤이다.
김순임 작가는 각 지역의 자연과 그로 인한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발견된 이야기들을 각 지역 특유의 자연 오브제 및 공간과 엮어 설치, 장소특정적 현장작업, 조각, 영상, 사진, 퍼포먼스, 드로잉, 발간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2002년 이후 환경과 사람, 자연과 생태를 주제로 세계 다양한 곳에서 프로젝트와 전시를 통해 작업을 발표하고 있다. 경북 풍기에서 성장하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를 공부하였으며, 2005년부터 현재까지 인천 효성동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www.kimsoonim.com
출처 : 인천in 시민언론의 길을 열어갑니다(http://www.incheon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