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야투자연미술국제레지던스프로그램’관련 인터뷰
_허나영 평론가 with 김순임
■ 야투레지던스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기간동안 느낌과 생각을 말씀해주세요.
연초에 이응우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었습니다. 케나다 작가들과 교류프로그램으로 한국과 케나다에서 현장작업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는데, 참여할 수 있냐고 물어보셔서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야투와 2003년 이후 여러 프로그램을 함께 해 오고 있었지만,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처음이라 기대도 되고 설레었습니다.
레지던시 기간동안 원골 예술마을에 머물게 되었는데, 건강한 칠흙같은 어둠의 밤과, 새벽의 차고 상쾌한 공기와 새소리, 자연과 작은 밭을 일구는 주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함께 했던 케나다 작가들과 함께 작업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개인사나, 고민, 사회나 철학또한 교류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침은 각자 일어나는 대로 해먹고, 점심은 작업사이트별로 해결하고, 저녁은 함께 요리하고 설거지 하며, 생활을 나누며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작가들이 프로젝트나 전시로 만날 때 밥을 함께 먹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밥을 나누는 행위로 우리는 서로 다른 점을 발견하기도 하고, 또 이해하기도 하고, 그 횟수가 거듭될수록 식구가 되어갑니다.
■ 이번에 작업하신 금강변과 공주 지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2003년 이후 거의 매년 공주를 방문하면서 항상 변하지 않은 듯 변화하는 숨쉬는 곳임을 느낍니다. 공주를 처음 만난 해에는 <어디서 굴러먹던 돌멩이> 작업을 위해, 한달동안 공주의 골목골목을 돌아다녔습니다. 공주의 골목, 그 모퉁이 마다. 역사의 레이어가 숨겨져 있습니다. 어릴적 수학여행에서 보았거나, 교과서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천년의 유적도, 조선말 의병의 흔적도, 종교사, 사회사, 근현대 유적까지 생생한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이후 공주를 방문해서는 공주의 자연이 보였습니다. 숲과 그곳에 의탁해 사는 동물들과, 보가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강이 보이더군요. 매번 공주에서의 작업은 그 기간의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공주에 산다는 마음으로 거주민처럼 느끼고 존재하려 하였습니다. 초대해 주신 분들의 환대로 작가의 의지를 진심으로 도와주셨기 때문일겁니다.
■ 야투는 ‘자연미술’을 내걸고 1980년대부터 활동하고 있는 그룹입니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이번 레지던스로 운영되었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은 자연미술과 어떠한 연결성을 가지고 있는 지 설명부탁드립니다.
처음 야투를 알게 되었던 2003년의 여름에 저는 아직 작가적 스타일이 정해지지 않은 학교를 갓 졸업한 꼬마 작가였습니다. 학교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작업, 야외에서 돌을 쌓거나, 무너지거나 사라지는 작업을 하던 저는 이런 작업이 현대미술에서 ‘작업’ 또는 ‘작품’행위로 읽혀지고, 전시형태로 관객을 만날 수 있음을 야투를 통해 확신했습니다. 또한 야투의 자연미술로 연결된 세계 네트워크는 작업을 통해 세계 많은 곳을 떠돌고 싶은 작가에게 큰 동기가 되어주었습니다.
제 작업은 ‘자연미술’의 영역에만 있지는 않습니다. 환경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외부공간에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 공간에서 만나는 지질, 지형학적 특성과, 연결된 사람들, 역사, 숨겨진 이야기들, 식생, 계절의 변화등 지역과 그 지역을 지키는 존재들, 사람을 변화시기는 그 지역의 자연과 그 현상을 관찰하는 것이 좋고, 이를 작업으로 연결하려합니다. 이런 작업방향이 만들어지기까지, ‘자연미술’은 여전히 큰 스승이자, 감각을 열고 훈련시키는 작업이자 명상의 방식입니다.
■ 금강변의 작업과 캐나다 테마가미의 작업이 유사한 것 같습니다. 연결성이 있다면, 설명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강변과 산 위라는 장소적 차이점도 있었을 거 같습니다. 어떠한 점이 다른 지도 설명 부탁드립니다.
금강변에서의 작업 <금강변에 뜬 달>은 레지던시 기간 중 3일동안 금강변에 나가 해가 있는 시간 동안 작업하였습니다.
공주에 프로젝트를 하러 올때는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할지 계획하고 오지 않았습니다. 거주와 작업이 공주로 한정될지, 아니면 노마드로 다니게 될지 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케나다 작가들이 내한하고, 모두 만나 의논하여 거주기간 동안 어떻게 작업할지 정하게 되었습니다. 멀리서 찾아온 캐나다 작가들의 의견에 많은부분 맞추었고, 이에 레지던시 기간동안 각자 구상하고 있는 작업에 도움이 될만한 장소들을 함께 답사하고, 공주에서 정주하며 작업하는 것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답사가 진행되는 몇일 동안 참여작가들과 서로 적응하며 작업을 구상해야 했는데, 서로 다른 작가들의 세계관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이에 저 또한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저와 공주를 작업으로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작가들을 작업장에 픽업해주고, 저는 최근 공주에서 가장 관심있게 보고 있는 금강 가로 갔습니다. 몇 년사이 사라졌던 모래톱이 생겨나고 아름다운 강돌들과 모래들이 쌓인 강변을 발견했습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이 곳에 오래 앉자있고 싶었고, 이는 작업이 되었습니다. 작업할 때는 힘들었지만, 작업하는 3일동안 정말 다양한 날씨가 찾아와 주었습니다. 작열하는 태양의 날, 비의 날, 거센 바람의 날이 있었고, 이는 제가 작업하면서 기록하는 영상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강변 모래사장에 앉아, 바닥을 만지며 안에 있는 돌을 둥글게 밖으로 빼내어 형태를 가시화 합니다. 이는 둥근 모양이어서, 누군가의 정성에 의해 만들어져서, 또한 이 장소에 얼마간 있다가 사라져서 ‘달’이라 합니다. 길지 않은 기간 날씨와 환경에 따라 더욱 짧게 생존하는 작업이죠.
이후 편집작업을 거쳐, 연미산 자연미술센터에서의 보고전에서는 영상으로 발표하였습니다.
일주일 쉬고, 고승현 선생님과 이응우 선생님과 함께 케나다로 출국하였는데, 아직 그곳의 숲은 제게 말로만 들었던 미지의 영역이기에 구체적인 작업을 구상할 수는 없었습니다. 현장에 가면 그 숲이 내게 무언가 할 수 있게 해줄거라는 유연한 생각은 가지고 갔지요. 토론토에서 어니스트씨가 소개해준 캐나다 미술과 관련된 공간과 전시장, 미술관 등을 보고, North Bey를 거쳐 보리얼 숲으로 갔을때는 대도시의 세련된 공간에서 천년의 숲으로 이동한 극렬한 대비를 경험하였습니다. 테마가미 호수변의 오두막집을 숙소로 하고 거대한 땅과 그 땅에 반응하며 형성된 지형, 호수와 섬들, 수백년의 수생이 보전된 숲을 탐험하며, 멀리 떨어진 한국과 캐나다가 얼마나 다른지, 또 자연에 의해 변화되는 인간의 삶이 또 얼마나 닮아있는지를 배웠습니다. 동물과 사람, 식물과 곤충, 땅과 물이 모두 연결되어있고, 서로 기대어 생존하고 있음을 제가 그 일부가 되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숲을 함께 둘러보고, 다음날 혼자 산책하며 둘러보며 한 장소를 발견했습니다. 보리얼 숲은 빽빽이 나무로 들어차 있어 숲깊이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 였습니다. 다만 길가에 잘려진 언덕에 바위와 돌로 된 언덕 공간에 공터가 있었고, 그 모양이 반달같기도, 산그림자 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에 달을 띄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로 80m 정도의 공터 였기에 25m 반경의 달무리가 그려지면, 바닥에 하늘의 풍경이 보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가운데 위쪽에 바위로 구성된 자리에 둥근 형태로 이미 큰 돌들이 자리잡고 있어 더욱 그 땅에 제 달이 드리워진 모습이 상상되어 한눈에 그 자리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환경은 금강과 무척 달랐습니다. 강가가 아니라 숲의 언덕이었고, 호수가 근처에 있지만, 큰 키의 나무들로 둘러싸여 무척 고요한 곳이었습니다. 금강가에서는 바람이 많이 불어, 바람소리와 차소리가 났지만 모기는 없었는데, 보리얼 숲에서는 어떤 차소리도 들리지 않는 깊은 숲이면서, 바람이 없는 호숫가라서 엄청난 모기와 흡혈파리들과 동거하게 되었죠. 초대해 준 데못작가의 딸이 사용하던 버그셔츠를 머리부터 뒤집어쓰고 작업해도 귓가에 울리는 모기소리는 음악이다 생각하고 작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보리얼 숲의 땅에는 금강가와 달리 낮은 풀들이 자라 있었습니다. 달의 형태를 만들며, 돌만 빼는 것이 아니라, 작은 풀들을 원밖으로 옮겨 심어, 둥근 형태가 도드라지게 작업하였습니다. 이는 금강에서의 작업보다 더 오래 이 땅에서 생존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금강에도, 보리얼 숲에서도 저는 달무리가 있는 달을 띄웠습니다. 작업방식을 택스트로 인식한다면 비슷하게 보실 겁니다. 하지만 달은 만드는 행위는 제가 그 땅에 푹무질러 앉고, 해가 떠 있는 동안 그 땅을 만지며, 그곳을 공부하는 시간입니다. 그곳에 있는 돌과 흙과, 풀과, 곤충과, 야생동물을 만나는 방식이며, 이는 달의 흔적이 되어, 그 장소에 조금 낮선 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금강에 뜬 달은 금강을 비추고, 보리얼 숲에 뜬 달은 보리얼 숲을 비추게 되죠.
레지던시 =거주 =삶. 머리와 눈으로만의 경험뿐 아니라 손으로 촉감으로 시간과 마음으로 거주하는 방식으로 달을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달은 작가의 거주의 작은 흔적이자, 그곳에 남아 변화된 풍경이고, 이는 또 그곳의 자연을 비추게 되므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비추어 또 이야기가 더 자라서 제가 들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 이번 작업에서도 땅에 앉고, 돌과 흙, 풀을 직접 매만지면서 작업을 하셨습니다. 이렇듯 자연과 함께 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작가님에게 있어서 자연은 어떠한 의미일까요?
나에게 자연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서 나와 자연은 분리 가능하고 분석 가능한 어떤 것처럼 여겨집니다. 나에게 자연은 무엇일까요? 도시나 문명의 상대적인 개념의 자연으로 이 질문을 되세긴다면, 소백산 언저리 풍기에서 살때부터 전 실내보다 실외가, 가게에 놓여진 새 물건들보다, 땅바닥에 앉아서 돌을 놓고, 들풀을 꺽고, 메뚜기 뒤를 쫒으며 더 신났던 것 같습니다.
나에게 자연은 무엇일까요? 자연이 어떤 대상이 아닌 현상이라면, 저도 자연이라 생각합니다. 스스로 나지는 않았지만, 환경에 반응하며 지속적으론 변화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 주변이 궁금한 것 같습니다. 이는 곧 제 모습, 제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거주하는 곳을 관찰하여 작업하는 것은 어쩌면 계속 저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다 떠나, 어떤 거대한 담론이나 목적보다, 그렇게 한 자리에 앉아 그곳을 만나고, 몰랐던 것 못봤던 것, 못느겼던 것을 발견하는 순간의 행복감이 엄청납니다. 그렇게 긴시간 하나하나 천천히 조금씩 만져서 만들어진 거대한 풍경은 그곳에서의 시간을 드러냅니다. 시간이 아주 자~알 갑니다. 해가 뜨고 해가 지고, 현장에서의 시간이 훌쩍 흘렀을 때 기분이 좋습니다. 나에게 자연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