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Critic

251213 자연의 회복과 인간의 치유에 대한 소망 _허나영(시각장 연구소) _2025 야투자연미술국제레지던스프로그램, 회복의 자연
2025-12-13 11:49:19

● 자연의 회복과 인간의 치유에 대한 소망

허나영(시각장 연구소)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과 함께, 세계는 인류의 마지막을 향한 초읽기에 들어갔다. 혹자는 2030년이 마지노선이라고, 또 다른 이는 이미 그 선을 지나버렸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마치 언젠가 탈선할 거라는 결말을 아는 ‘설국열차’에 탑승한 것같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의 걱정과 무관심에 아랑곳하지 않고 조금씩 회복을 하고 있다. 가까운 예로, 2022년 3월에 대형산불로 피해입은 울진지역에 자생식물과 자연재료를 활용하여 생태를 복원하였고, 이에 2025년 10월에 ‘제2회 세계복원대회(World Restoration Flagships)’에서 우수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렇듯 인위적인 방식이 아닌 자연의 생태를 인정하고,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도우면 자연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다는 게 조금씩 증명되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자연의 회복을 통해 인간의 미래도 치유될 수 있을지 모른다.

야투 역시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인위적으로 변형하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생성하고 소멸하는 자연의 시간과 더불어, 야투의 작업은 그 흐름을 역행하지 않고 함께 변화하고 사라지는 과정 속에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연미술’이라는 이름 속에서 새로운 예술을 제기하고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다.


2025 야투자연미술국제레지던스프로그램, 회복의 자연

2025년 야투 자연미술국제레지던스프로그램에서는 ‘회복의 자연(Nature of Recovery)’을 주제로 삼았다. 5월 11일부터 31일까지 캐나다 작가 어니스트 데트바일러(Ernest Daetwyler), 더못 윌슨(Dermot Wilson), 도널드 크레티앵(Donald Cretien)과 한국 작가 고승현, 이응우, 김순임이 한국 연미산자연미술공원에서 작품을 설치하였다. 이어서 6월 7일부터 28일까지 캐나다 온타리오 북부 테마가미(Temagami) 및 화이트 베어 숲에서 현지의 작가들과 함께 설치 작업과 전시를 했다.

테마가미 지역은 호수와 숲이 자연 그대로의 형태로 남아있는 곳으로, 원주민들의 생활과 문화가 남아있기도 하며 지역주민 역시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금강과 연미산에서의 자연미술과 연계하여 테마가미에서도 자연과 함께 하는 예술작업을 각자의 개성을 담아 이어갔다. 이는 캐나다의 환경미술단체 ‘브로큰 포레스트 그룹(Broken Forest Group)’과 온타리오 북부의 ‘Nipissing Region Curatorial Collective(NRCC)’ 그리고 야투가 함께 기획하고 진행한 교류활동이었다. 더불어 하반기인 11월 8일부터 30일까지는 강수희와 패트릭 M. 라이든(Patrick M. Lydon)의 생태예술창작그룹인 ‘시티애즈네이처(City as Nature)’의 전시가 이루어졌다.

이번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한 작가들은 각기 자연과 함께 하는 방식과 예술적 표현이 달랐지만, 이들은 모두 인간을 자연과 동등하게 두고 함께 하고자 했다. 또한 자연의 가치와 힘에 주목하고, 자연이 가진 회복력처럼, 인간이 공존하면서 치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예술로 보여주었다.

‘야투야외현장미술연구회’ 창설 멤버인 고승현은 현재까지 야투와 함께 하며 ‘자연미술’ 작업을 하고 있다. 2025년 5월 공주 연미산에서 일정 시간 동안 한자리에 앉아 주변에서 발견된 자연물을 하나씩 손 위에 얹고 사진을 찍어서 기록한 <앉은 자리에서> 시리즈를 선보였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6월에 <태마가미 드림캐처>를 설치하였다. 작가는 자연을 바라본 관점과 그 자리에서 수집한 자연물과 함께 하는 예술작업을 통해서, 보다 자연을 깊이 들여다보고 연결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또한 야투 창립회원이자 자연미술연구가로 이응우는 활발한 자연미술 작업을 해오고 있다. 가로수 정비사업으로 밑동이 잘린 무궁화 나무를 새의 몸체로 은유한 <추락하는 새>를 연미산자연미술공원에 설치하였다. 이는 자연의 말을 듣지 못하고 망가진 지구를 비유한다. 그리고 캐나다의 테마가미에는 이응우의 <아홉개의 돌> 연작을 설치했다. 평화를 기원하기 위한 것으로 가장 큰 한자리 수이자 우주의 힘이 균형을 이루는 아홉으로 상징한다.

김순임은 스스로를 작가이자 직조자(weaver)라 말한다. 현장작업을 하면서, 그 장소의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엮기 때문이다. 금강변과 캐나다의 테마가미에서도 각기 다른 장소에서 땅과 함께 자연과 교감하는 작업을 하였다. <금강 변에 뜬 달>은 3일 동안 금강변에 앉아 땅을 어루만지고 돌을 움직이면서 달을 만들었다. 부드러운 흙과 모래로 인해 이곳은 사슴과 같은 야생동물이 좋아하는 장소가 되기도 하고, 자연의 흐름에 따라 이후 점차 사라져갔다. 그리고 <보리얼 숲에 뜬 달>은 테마가미의 언덕에 앉아 땅을 어루만지며 달을 만들면서 다른 장소와 자연 속에서 작가는 교감하였다.

다학제적 작업과 공공 미술프로젝트를 하는 어니스트 데트바일러는 ‘환경(Environment)’을 주제로 작업해오고 있다. 연미산과 테마가미에도 환경 위기에 대한 지구인들의 경각심을 주기 위한 ‘지구로 돌아오는 로켓’을 설치하였다. 공주 근방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인 대나무로 만든 <로켓 사이언스(Plan A)>는 플랜 B는 더이상 없기 때문에 자연을 지켜야 하는 현 상황에 대해 유쾌한 경고를 한다. <거꾸로 선 로켓/테마가미> 역시 거꾸로 돌아오는 로켓으로, 외계탐사나 끝나지 않는 갈등과 전쟁, 위기 등에 대한 문제가 아닌 지구의 숲과 땅, 물, 공기 등의 자연을 돌보아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업의 잘못된 행위와 환경 위협에 대한 경각심을 예술로서 일으키기 위한 ‘브로큰 포레스트 그룹(Broken Forests Group)’ 멤버인 더못 윌슨은 브라질, 폴란드, 콜롬비아, 대만, 멕시코, 미국 등지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연미산자연미술공원에는 캐나다 그래시 마운틴(Grassy Mountain)에서 석탄을 채굴해서 해외로 수출하는 열차에서 착안한 <붉은 석탄 나선 스크린>을 매달았다. 그리고 캐나다에서는 캐리부 산 절벽 위에 12피트 크기의 ‘만다라’인 <창조-파괴 나선 포털>을 나무 사이에 설치하였는데, 이는 태극의 음양의 상징을 닮아있다. 두 작업을 통해 자연이 가지는 평화로운 항상성을 스파이럴과 같은 곡선으로 보여준다.

캐나다 온타리오 북부의 니피싱 원주민 지역 출신의 아니시나아베의 마틴부족(Marten Clan)인 도널드 크레티앵은 자신의 부족을 비롯한 원주민에게 구전으로 전승되어 온 자연에 대한 상징체계를 적극적으로 작품에 반영하고 있다. <마니투 커넥션>에서도 빨강, 노랑, 검정(파랑), 흰색은 동서남북을 상징하고, 말을 하는 자, 즉 대변자(speaker)이자 추장을 의미하는 학(crane), 번개와 비를 통해 대지를 돌보는 존재인 천둥새(Thunderbird), 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13개의 무늬가 있는 ‘거북섬(Turtle Island)’ 등 상징 이미지를 회화로 나타내었다. 더불어 태극의 음과 양, 연미산 곰 이야기를 반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테마가미에서는 동물의 뼈와 자연요소 등을 설치한 <존중>을 통해 숲과 그 안에 사는 동물의 영혼을 기렸다.

마지막으로 시티애즈네이처는 강수희와 패트릭 M. 라이든이 함께 하는 생태예술 창작그룹이다. 허브 전문가인 강수희는 자연에서 찾은 치유의 선물인 허브에 주목하면서 이를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을 제시하며, 라이든은 사회적 참여예술, 설치, 미디어 제작 등을 통해 자연에 대한 관점을 예술로 제시한다. 두 작가는 2015년 다큐멘터리 <자연농(Final Straw)>을 제작하고 다수의 전시에 참여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잡초 약방>을 열어, 흔히 찹초로 치부되는 쑥, 질경이, 민들레, 토끼풀을 말리고 덖어서 차로 만들어 향과 맛을 느끼고 그 색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잡초에 대해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소중히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절망이 아닌 희망으로..

시티애즈네이처의 라이든은 래리 콘의 말을 상기하며, “내가 예술을 만들면서, 인간이든 다른 존재이든 ‘다른 생명’이 함께 번성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를 고민한다고 말한다. 오염이나 파괴에 대한 부정적인 금지 이전에, 더 아름다운 세계를 상상해보고 만들어볼 것을 요청하면서 말이다. 이는 어쩌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말일 것이다. 이미 자연은 파괴되고 있고 기후위기는 그 한계를 넘어가고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다르게 생각해보게 한다. 그저 부정적인 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할 수 있고 지속가능한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상상과 행위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가져보게 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자연의 회복 뿐 아니라 인간의 치유도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긍정적인 희망은 금강의 줄기와 함께 45년을 함께해온 야투의 자연미술과도 맞닿는다.

야투의 산증인인 고승현은 “자연과 함께하고, 자연의 일부가 되며, 자연의 현상에 순응하고, 몸으로 체험하고, 자연에 동화되는 미술”이 자연미술이라 말한다. 또한 함께 해온 이응우 역시 “작업 속 자연은 단순 오브제가 아닌 창작의 주체”라는 점을 강조한다. 시기마다 자연미술의 양상은 조금씩 달랐지만, 이들이 해온 작업에서 분명 자연은 고쳐야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하는 동료였다. 김순임 역시 “자연은 어떤 대상이 아닌 현상”이며, 작가 스스로도 자연이라고 생각하며 자연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이번 국제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통해 함께 작업을 한 캐나다 작가들도 공주와 테마가미의 대자연에서 함께 예술작업을 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이야기했다. 어니스트 데트바일러는 지구에서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이 함께 이루는 공동체, 그리고 자연환경이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더못 윌슨은 캐나다에서 여전히 채굴되고 수출되는 석탄에 대한 문제점을 공주에서 ‘숯’을 통해 해결점을 찾으며, 끊임없이 소용돌이와 같이 항상성을 찾아 나가야함을 말한다. 또한 크래티앵은 자신의 조상들이 자연에서 배워온 가치를 통해 “우리가 설 수 있게 해준 ‘어깨’에 대한 존중과 앞으로 살아갈 세대의 미래를 위한 책임감 역시 자연에 대한 올바른 태도”임을 보여준다.

자연의 힘에 대한 긍정, 그리고 이를 함께 하면서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로서 현재와 미래를 아름답고 올바르게 이끌어갈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는 현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저 부정적인 내일을 수동적으로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작더라도 희망의 싹을 키우며 상상이 가득한 적극적인 오늘을 보낸다면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자연미술이 이 시대와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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