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Pro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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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The Growth Story of HomE+Farm 2017-2018_ detail

 

The Growth Story of HomE+Farm 2017-2018

20:40:00, HD1280x720, ©Kim Soonim, edit 20180404, 모니터플레이

 

 

 

2018. 4. 5 아침 집을 나서기 전 냉장고 문을 열고 먹을걸 찾는다. 우유는 종이팩에, 또 그 종이팩 3개를 한꺼번에 싸놓은 비닐에 쌓여있다. 달걀은 10개묶음 종이 박스에, 그리고 그것을 싼 또 다른 광고용 종이에 둘러져 있다. 채소는 이것 저것 섞여서 종류와 이름을 알 수 없이 그냥 '셀러드'라는 이름으로 스티커와 컬러풀한 테잎이 붙은 플라스틱 팩에 그리고 그 팩을 싼 비닐에 단단히 포장 되어있고, 거의 모든 '먹을 것'이 화려하고 단단하게 포장이 되어 있다. 신기하게도(?) 아니, 이제 당연하게도 사과는 사과처럼, 배는 배처럼, 참외는 참외처럼, 딸기는 딸기처럼 생겼다. 다시 말하면, 모두 공장에서 찍어 나오는 것처럼 거의 비슷한 크기의 비슷한 색, 비슷한 형태들이 다둥이들 마냥 플라스틱 팩 안에서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대형마트에서 같은 모습을 한 식자재를 사고, 냉장고에 넣고, 원할 때 꺼내 먹는다. 어제 먹은 애호박과 오늘 먹는 애호박이 형태상으로는 구분이 안될 정도로 같다.

편하다. 너무 편하다. 이 중독된 편안함에... 내가 먹는 것이 무엇인가...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저 깨끗한 곳에서 조명 잘 받고, 맛나고, 잘생기고, 가격이 맞으면 먹는 것으로, 또 반대로, 포장되지 않고, 더럽고, 못생기고, 가격이 없으면... 먹을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어진다.

 

작업의 시작_ 2017. 4.1. 소나무 봄 워크샵 후, 최예문선생님과 전원길선생님께서 직접 키운 닭의 알 6알을 선물로 받아 집으로 왔다. 사먹는 달걀보다 70%정도 작은 크기의 조금 다양한(흰색과 옅은 푸른색, 미색 노르스름한 색 등이 섞인) 색의 신선하고 귀한 먹을거리였다. 이 낮 선 음식을 냉장고에서 꺼낸 (도시에서 나고 도시에서 성장한) 남편의 반응은, 흠짓 놀라며, '이상해.... 못 먹는 거야..... 안먹어....'였다. 문득 궁금해졌다. 아니 보여주고 싶었다. 당신이 먹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냉장고 안의 식자재도 흙을 밟고 성장한, 살아있던,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걸....

 

뭐 이게 시각예술 작업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대형마트(홈플러스 인천 작전동점, 이마트 동인천점, 하나로마트 안성점)를 돌며 화려하게 포장된 예쁘고(?) 깨끗한(?), 익숙한 식자재들을 사서, 주변작가들과 나눠먹고, 그 뿌리나, 씨앗, 성장 가능한 줄기 등을 분류한 후, 재배하기 시작했다.

 

성장_ 흙, 물, 햇빛... 계절별로 수종을 달리하며 다양한 종류의 녹색들이 경쟁하듯 정글처럼 자라났다. 5월 폭풍성장을 보며.. 어쩌면 열매를 거둘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는다. 6월 미국선녀벌레의 습격... 온실의 녹색 줄기들이 흰색 작은 날벌레들로 가득 채워졌다.. 약을 쳐야 하나?.. 고민하며... 나는 지금 농사를 짓고있나? 질문했다. 그 주에 또 두어 시간 안에 화분 하나를 먹어 치우는 먹성의 대형 송충이들 애벌레들이 등장한다. 잡아야 하나? 나는 내가 키우는 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그걸 먹는 벌레들을 잡는 것이 맞나? 또 질문한다.

지켜보자... 이 작업에서 보고싶은 것은 내가 편하게 꺼내먹는 플라스틱 비닐 속의 먹을 것이 사실은 생명을 품은 생명인 것이라는 걸 시각적으로 보려 함이다. 그렇다면 우리 뱃속에 들어가는 건 옳고 벌레가 먹는 건 그른가? 생명이, 그 생명 에너지가 어떻게 형태를 달리하며 이동하는지 지켜보자...

 

씨는 싹이 되고, 싹은 잎이 되고, 꽃이 되고, 벌레가 먹고, 그 벌레를 먹는 벌레가 오고, 거미가 오고, 잠자리가 오고, 그걸 먹으러 새들이 들어오고, 똥을 싸고, 벌레들의 사체들은 또 흙으로 가고, 벌레 먹어 병든 식물들은 또 시들어 땅으로 가고.... 봄에는 봄의 식물이.. 여름엔 여름의 식물이... 가을엔 가을의 식물이... 봄에는 봄의 벌레가... 여름엔 또 가을엔... 종류를 달리하며 일년간 온실안에서는 수많은 종류의 생명들이 에너지를 주고 받으며 세계를 형성하고 생태계의 역사를 쌓아갔다. 겨울... 모든 것이 얼어 붇고 움직이지 않아 죽은 듯 보였지만... 어쩌면 에너지는 보존되고 있었던 것 같다. 3월 다시 햇살이 들고 따뜻해지자... 땅속에서 지난해 봄에 잠시 살다 숨어버린, 같은 듯 다른 달래가 제일먼저 인사를 한다.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은 생명이다.

어떤 생명은 먹히는 행위로 내 몸의 일부가 되고, 동력이 되고, '나'를 유지시킨다. '나'라는 생명도 이 생명들로 구성된 생명이다. 시간 속에서 또 다른 생명으로 변환될 생명.

 

온실 속의 실험으로 보여진 생태계는 우리가 믿는 '먹을 것' 속에  숨은 수많은 생태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먹을 것'의 고정된 이미지에 질문한다.

 

2018. 4.5 김순임 글